1. 책의 첫인상
표지가 반질반질하고 새파란 색이 시원해서 좋았다. 표지의 느낌이 맘에 들었기에 배 위에 어떤 소말리아 애같이 생긴 남자애와 호랑이가 둥둥 떠있는 건 미처 발견하지 못한듯. 표지 뒤를 관찰하니, "어떤 애가 450파운드짜리 벵골 호랭이, 상어랑 태평양을 여행하는 얘기야. 열라 많이 팔렸어!!" 이런 얘기가 주절주절 쓰여 있다.
이 문구가 이 책 속에서 그렇게 "리얼한" 의미를 가진 건지 전혀 몰랐다. 그냥 뭐 호랑이랑 오랑우탄이랑 뭐시기랑 자아찾기 바다여행같은 걸 하나보다 라고 생각했지. 인도 사람은 원래 그런 거 좋아할 거 같잖아. 그러니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동화느낌이랄까. 나름 어려운 책이라니까 소피의 세계처럼 짐승들이랑 이상한 얘기를 주절거리려나 하는 생각도 들고.
이런 인상이었기에 책의 내용은 충격 대반전이었다.
2. 책 속의 현실
간단히 말하면, 이건 동화가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뻥이었다(원래 소설은 다 뻥이니까).
같이 표류한 호랑이는 정말 말도 안통하고 사람잡아먹는 호랑이였고, 상어도 정말 영화 "죠스"에 나오는 그런 상어였다. 파이 어린이는 책이 끝날 때까지 계속 "무서워 덜덜덜"을 하고 있어야 했다.
물론 중간에 어려운 책답게 파이 어린이 정신이 세 개로 분열했음을 암시하는 대목들도 있고, 끝부분에 "너는 뭐냐 진실은 뭐냐" 이런 현학적이고 난해한 대화들도 나온다. 뭐 이런 건 좀 심각하다 싶은 책이나 영화에선 흔히 갖다 쓰는 컨셉이잖아. 그러나 다른 어려운 철학책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충분히 상상할 수 있는, 있음직한 상황과 공포"라는 거랄까. 판타지틱한 세계가 배경이 아니라는 것.
성실함이 있다면 이 책 속의 상황을 좀더 자세히 정리하겠지만, 귀찮으므로 패스 ㅡㅡ.
3. plot
이 책의 plot 은 크게 세 부분이라고 한다. Part 1, 2, 3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그 각각이 하나의 plot이라고 보면 된다.
- Part 1 : 캐릭터, 종교 관념, 짐승들 등 이 책의 배경에 대한 사전 답사
- Part 2 : Castaway life (A)
- human --> animal 로 변질(?)해 가는 Pi의 변천사(한마디로 야생라이프).
- 다른 생물들과 어떤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지.
- Part 3 : Castaway life (B)
- animal --> human으로의 복귀(?)
- "혼자됨"
여기에 16살 짜리 소년이 어떻게 부모님 없이 홀로서기 하는지 성장드라마 컨셉 추가.
4. 흥미로운 개념들
- "alpha male" vs "omega male"
보통 우리는 "alpha"는 시작, "omega"는 끝을 의미한다고 많이 알고 있다. 이와 유사하게, alpha male과 omega male은 서로 반대의 의미이다. 간단히 말하면 alpha male은 "leader", omega male은 "follower"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이야기에서 파이와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타고 있던 배가 침몰하고 이러저러하다 달랑 둘만 남아 오랜 시간을 표류한다. 이 시간 속에 파이와 리차드 파커의 관계는 다음과 같이 변한다.
- 초기 : 파이는 리차드파커가 무서워요. 여차하면 도망갈래!! 하고 피난처(?)를 만든다
- 중반 : 동물원 가정(?)에서 자란 파이는 "내가 살려면 별수 없이 호랑이를 길들여야돼"라고 생각하기 시작하고, 살기 위해 별수 없이 길들이기를 시작한다.
- 말기(?) : 파이는 능히 호랑이를 컨트롤 할 수 있게 된다. 무려 나중엔 서커스 재주넘기도 시킨다(머엉).
보통 사람 보통 정신이면 당최 애시당초 잡아먹혔을 텐데 갱장한데~!! 라는 소감은 일단 제껴두고(...).
즉 파이는 이런 과정들을 통해 점점 리차드 파커 호랭이를 "omega male", 자신을 "alpha male"로 각인시켜간다.
물론 나중에 헷갈리는 대화들을 보면 파이는 리차드 파커를 자기 자신이라고도 생각한 것 같고, 인생의 위기를 같이 헤쳐나간 친구라고도 생각한 듯 싶다. 단순히 주종관계는 아닌거지.
내가 파이를 "alpha male"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이유도 그거다. 그 또한 결국 외로움 때문에 호랑이를 떨궈내지 못한 거잖아? 게다가 호랑이는 그를 alpha male이라고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다. 그가 진정한 alpha male이었다면, 호랑이의 영역을 마구 들어가도 호랑이는 깨갱 날 잡아잡수 했을텐데, 파이는 소심하게 경계선에서 어물쩍어물쩍하고 있었을 뿐.
- And so goes it with God.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파이가 일본에서 조사나온 양반들에게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들려준다. 처음에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호랑이가 있었고,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은 죽어버려(긴 이야기라 설명 생략;) 호랑이랑 자신이 남았고, 어떤 일들이 있었고.. 이런 이야기들.
그러나 당연하겠지만 그 양반들은 이야기를 믿지 못하고, 그런 짐승 나오는 얘기 말고 배가 왜 침몰했지 그런 얘기를 해주세요 하고 조른다. 파이는 "아 짐승 없는 얘기요?" 하면서 하이에나를 요리사로, 얼룩말을 항해사로, 오랑우탄을 엄마로, 호랑이를 자기 자신으로 transformation 해버린 버전을 들려준다ㅡㅡ;.
짐승 버전과 사람 버전중에 어느 버전이 진짜같냐고 물으니, 일본 양반들이 "짐승 버전이 그럴 듯 하구나" 라고 답한다(솔직히 나는 사람 버전도 너무 리얼해서 이넘 정말 미친 게 맞구나라고 생각했다. 항해사의 다리를 요리사가 찢어버리고 요리사가 엄마를 죽여버리고 ㅡㅡ;;).
아마 일본인 양반들은 둘다 말도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쩔수 없이 비위를 맞춰 줘야 하니 그런 말을 했을 게야.
여튼 그 답에 이어서 파이는 이 말을 꺼낸다.
"And so goes it with God."
이게 당최 무슨 뜻인지 몰라서 "God knows it"과 비슷한 뜻일 거라 추측하고, "이게 진짜랍시고 파이가 말하는거냐, 아니면 표류생활동안 정신이 헷가닥해서 얘기를 몇백 페이지동안 마구 지어낸 거냐?"하고 헷갈려 했는데,
원래 뜻은 인도에서 하는 인사인 "인샬라"라고. "If God is with me..." or "If God is willing..."이랑 비슷한 뜻이라 한다. 즉, 파이 자신은 표류 동안 벌어진 모든 이야기가 진실이라는 걸 확신하고 있었다는 것. "신이 날 보고 있었다면, 내 말이 진실이라는 걸 다 알고 있었을 게야." 이 정도라고 하겠다.
(흠.. 근데 일본인들이 보고서에 "그는 정말 호랑이를 조련했어!!"라고 쓴건 뭐였을까. 결국 믿게 된거였을까나.)
- delusional
"망상의"라는 뜻이다.
"delirium"은 "delusion"의 동의어(그런데 스티브샘은 이걸 "미친 imagination"이라고 설명하더라 푸핫 ;-;ㅋ).
5. 대반전.
이 이야기는 다
쌩뻥이라고 한다(작가가 지어낸).
작가가 파이 파텔을 인터뷰하는 식의 장면이 있었기에 혹시나 했으나 ㅡㅡ;;.
"작가는 인도 여행을 다녀왔다" 만 유일하게 진실인 부분이란다.
소설은 소설이지 뭐. 여튼 작가들은 갱장하다.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이렇게나 자세하고 있어보이는 설정으로 지어내다니. 특히 표류중에 들어갔던 사람 잡아먹는 섬은 흠좀무 ;-;. 무슨 천공의섬 에스카플로네 이런것도 아니고.